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흑백의 시선, 사랑의 몽환
"파리의 밤, 두 영혼이 흐르다" 는 줄거리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밤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한 청년 ‘알렉스’와 고독에 휩싸인 여인 ‘미리’가 우연히 마주치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만남’과 ‘사랑’이라는 서사를 택하면서도, 그 안에 뚜렷한 갈등이나 변화보다는 감정의 흔들림을 중심에 둔다. 알렉스는 예술가 지망생으로, 연인에게 차인 후 삶의 의미를 잃고 도시를 떠돈다. 그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과거의 기억을 반복하고, 파리의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걸으며 시간을 맴도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미리는 겉보기에는 차분하지만, 그녀 또한 똑같은 공허함을 안고 있다. 그녀는 현재의 연인과도 단절감을 느끼고, 무..
2025. 4. 10.
영화 타르(TÁR, 2022), 지휘봉 아래의 그림자
완벽한 거장의 이면 – 리디아 타르의 초상타르(TÁR)는 한 인물의 몰락을 다룬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 인물이 ‘왜’ 무너졌는지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주인공 리디아 타르가 단순한 악인이 아닌, 강렬한 재능과 권력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 최초의 주요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이자, 현대 클래식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가진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기보다는, 그 업적 아래 숨겨진 심리적 불안, 권력의 중독, 그리고 관계의 파열을 탐색한다. 이 점에서 리디아 타르는 단지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권력과 예술이 얽힌 ‘구조’ 자체를 인격화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리디아는 완벽주의자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지만, 그 모든 위엄..
202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