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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2018) “존재를 고발하는 아이” “자인의 시선으로 본 세계"자인의 삶은 시작부터 부정당한 존재로 출발한다. 은 출생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한 소년이 자신을 낳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충격적인 서사로 시작되지만, 그 충격은 곧 연민이 아닌 깊은 분노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자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아이’로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생존을 위한 기능으로 취급받는 현실이다. 먹을 것이 없어 약을 훔치고,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떠돌며, 동생 사하르의 몸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곧 팔려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세계는 언어가 아닌 직감과 반사신경으로 작동하는 잔혹한 서바이벌이다. 하지만 자인의 본질은 단지 고통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이를 인식하고 거부하는 주체적 존재라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자인은 끊임없이 행동하고 .. 2025. 4. 8.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04) “조용한 방치, 소리 없는 절규”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 줄거리와 아이들의 생존기영화 **는 네 명의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도쿄의 한 아파트로 이사 온 싱글맘과 그 자녀들. 하지만 곧 어머니는 막내딸 유키를 제외한 아이들을 주민들에게 숨긴 채 떠나고, 아이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그들만의 생존을 시작한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전개보다는 조용하고 담담한 리듬으로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는데, 그 안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가장 큰 비극은 이 아이들이 ‘방치’되었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남 아키라는 명백한 아동이지만, 어른들은 그를 마치 ‘성인 남성’처럼 간주하며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그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은밀.. 2025. 4. 8.
영화 세일즈맨(2016), 무너진 일상, 균열의 심연 이란 사회와 가부장성의 그림자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영화 세일즈맨은 단순히 부부의 갈등이나 개인적인 복수극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란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억압적인 문화적 구조를 전면에 드러내는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 에마드가 아내 라나에게 일어난 폭력 사건에 대해 보여주는 반응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감과 지지를 보내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이 상했다는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반응은 단순한 개인의 미성숙함을 넘어서,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남성 중심의 명예 개념이 강조되는 이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라나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데 주저하며, 심지어 남편이 가해자를 추적하고 처벌하는 것에도 부담을 느낀다. 이는 단지 범죄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이 침묵을 .. 2025. 4. 8.
슬리피 할로우(1999) “목 없는 기사의 밤, 진실의 칼날” “이카보드 크레인: 합리와 공포 사이”영화 슬리피 할로우는 이성과 과학의 신봉자인 이카보드 크레인이, 미신과 공포로 뒤덮인 슬리피 할로우라는 마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조니 뎁이 연기한 이카보드는 감정을 억누른 채 논리와 증거를 앞세우는 인물로, 당시 뉴욕에서 과학수사 기법을 주장하며 고리타분한 전통 수사 방식에 반기를 들던 개혁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게 되는 ‘목 없는 기사’는 그의 신념에 균열을 일으킨다. 슬리피 할로우는 모든 것이 흐릿하고 비이성적으로 흐르는 공간이다. 이카보드는 처음에는 이 모든 사건을 사람의 소행이라 믿고 증거를 찾으려 하지만, 목 없는 시체들과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앞에서 점차 이성과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니 뎁은 이카보드라는 인물을 단순한 탐정이 .. 2025. 4. 7.
길버트 그레이프(1993) “멈춰선 삶 속의 따뜻한 숨결” 길버트의 무게: 책임과 자아의 경계길버트 그레이프는 조용한 청춘의 무게를 담담하게 그려낸 성장 드라마다. 조니 뎁이 연기한 길버트는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갇혀 살아간다. 아버지는 이미 자살로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는 극단적인 비만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여기에 정신 지체를 가진 동생 아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까지 돌봐야 하니, 그의 하루는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삶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그는 말없이 버티는 법을 배운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욕망은 철저히 눌려 있다. 이 영화의 감정선이 강한 이유는, 길버트가 처한 상황이 극적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종종, 타인의 기대와 가족의 책임 사이에서 스스로를 잊.. 2025. 4. 6.
영화 도니 브래스코(1997) “믿음과 배신의 경계선” “레프티와 도니: 의리인가 조작인가”도니 브래스코의 핵심은 단순한 잠입 수사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중심엔 레프티(알 파치노)와 도니(조니 뎁)의 관계가 있다. 레프티는 조직 내에서 하급에 머물러 있지만, 젊은 도니에게 조직의 생리를 가르치고 삶의 생존 방식을 전수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계는 점점 부자지간처럼 깊어진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도니가 FBI 본부에 돌아와 몰래 녹음했던 대화를 검토하던 중, 레프티가 그에게 건넨 말들을 듣고 심하게 흔들리는 장면이다. “넌 이제 내 아들이야”라는 말은 그저 연기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이 순간, 도니는 수사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정의의.. 2025.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