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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2016),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여름

by nonocrazy23 2025. 4. 9.

영화 우리들(2016),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여름
우리들(2016)

선이의 시선으로 본 관계의 시작

<우리들>은 여름방학을 앞둔 초등학교 4학년 선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선이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된 존재다. 영화는 그녀의 외로움을 거창한 설명 없이, 점심시간의 고요한 식판 소리와 혼자 있는 운동장으로 묘사한다. 그런 선이에게 하나라는 이름의 전학생이 다가오며 두 아이는 조심스럽게 친구가 된다. 선이에게 하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고, 하나에게 선이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기대어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서툶이 뒤섞인 모습으로 시작된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비밀을 나누고, 다정하게 웃는 장면들은 마치 긴 방학을 함께 보낼 동맹을 맺은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관계는 여름이 깊어질수록 점점 균열을 맞이한다. 그 틈의 시작은 작다. 하나는 선이와 가까워지면서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선이와의 거리도 멀어진다. 아이들 사이에선 사소한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로 관계의 역학이 바뀌고, 그 여파는 의외로 크다. 선이는 자신이 하나에게 더 이상 '특별한 친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묘한 상실감을 느낀다. 반대로 하나는 또래 아이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선이를 외면하거나, 때로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의 갈등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고,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기 싫은 방어’ 사이의 충돌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관계를 다룰 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만의 논리와 감정의 진폭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선이는 분명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분노로만 반응하지 않는다. 방학이 끝난 후에도 어색함과 망설임이 남아있는 그들의 관계는, 결코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이가 하나를 향해 짧게나마 시선을 주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감지하게 된다. 다시 관계를 맺고 싶지만, 다가갈 용기까지는 아직 나지 않는 마음. 영화는 그 조심스러운 감정선을 끝까지 지켜준다. 결국 <우리들>이 보여주는 관계의 시작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것이다. 선이에게 하나는 단지 ‘친구’가 아니라, 외로움의 벽을 넘기 위해 내민 작은 손이었다. 그 손이 잡히고, 다시 놓이고, 다시 기억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이 겪는 정서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친구란, 서로의 외로움을 처음으로 눈치채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영화가 던지는 성장의 아이러니

이 영화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속되고 싶어 하고, 동시에 거절당하거나 배신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선이와 하나는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그 마음이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단지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타이밍, 그리고 둘 사이의 사회적 맥락까지 작용한다는 것을 영화는 어린 주인공들을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이는 어쩌면 '처음 겪는 관계의 복잡성'이기도 하다. 선이는 외롭고 조용한 아이지만, 그 안에는 강한 소속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거절당했을 때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 하나와의 관계가 멀어지자, 선이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결국 스스로도 관계의 공격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는 선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 또한 가정환경에서 오는 불안과 외부에 대한 경계심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처음엔 선이에게 마음을 열지만, 반 친구들의 시선이 바뀌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이를 버린다. 이 선택은 어른의 눈엔 비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아이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충돌할 때, 아이들은 종종 그 중간에서 길을 잃는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되, 어떤 인물도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다. 선이도, 하나도, 때로는 친구를 괴롭히는 반 친구들도 모두 자신만의 이유를 가진 채 살아간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특정 인물에게 감정을 몰아가는 대신, 관계를 둘러싼 구조와 분위기, 눈치의 흐름, 침묵의 의미를 짚어낸다. 예를 들어, 선이가 하나를 향해 삐죽거릴 때, 그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왜 나를 다시 바라봐 주지 않느냐’는 절규다. 아이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들이 보내는 시선과 표정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어릴 적,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어떻게 상처로 바뀌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상처들이 어떻게 우리를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때로는 차가운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우리들>은 그런 감정을 누구나 겪었지만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끌어낸다. 영화가 보여주는 성장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단순한 학교생활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첫 상처’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윤가은 감독의 연출 미학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을 통해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아이들의 세계를 포착해낸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거창한 사건이 아닌, 작은 몸짓과 침묵, 그리고 느릿한 시선에 있다. 감독은 드라마틱한 갈등이나 폭력적인 표현 없이도, 아이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격랑을 정확히 전달한다. 이를 가능케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다. 윤가은은 아이들을 어른처럼 평가하지도, 순수하게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을 하나의 ‘복잡한 존재’로서 대한다. 선이의 조용한 외로움, 하나의 경계심 어린 표정, 반 친구들의 냉정한 시선 모두가 평등한 무게로 그려진다. 이는 단순히 카메라의 위치나 연출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세계관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는 증거다. 카메라는 대부분 선이의 시선 높이에 머무르며, 아이들이 마주하는 세계를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 세계는 어른이 보기엔 너무 평범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전부이자 우주다. 예컨대, 교실에서 무리 지어 앉는 자리 배치나 점심을 누구와 먹는지 같은 순간들이 이들에게는 깊은 고통이나 희열을 가져다준다. 윤가은은 이런 ‘작은 사건’들을 소중히 다루며, 이 작은 진동들이 자아와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영화 전체를 통해 증명한다. 또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설명하지 않고 ‘보이게’ 만든다. 인물 간의 갈등이나 감정 변화는 대사로 풀어지기보다는 표정, 몸짓, 장면의 길이를 통해 전달된다. 선이가 하나에게 다가가려다 주춤하거나, 하나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의 순간들처럼. 이 같은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게’ 하지,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관객 각자가 자신의 과거를 끌어와 해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깊은 몰입의 비결이기도 하다. 음향이나 음악의 사용 또한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장면은 실제 환경음이나 정적 속에서 진행되며, 감정을 유도하는 음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아이들의 심리 상태와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게 만든다. 정적은 고요함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의 무게를 표현하고, 때로는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 카메라는 그런 순간에 개입하지 않고, 물러서서 인물들을 지켜본다. 이런 연출 방식은 관객이 마치 스스로 아이들 곁에 앉아 있는 듯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윤가은 감독의 연출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의 힘을 믿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어른보다도 훨씬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조용한 상처와 작지만 깊은 용기들을 비춰준다. 이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마음 한켠이 저릿한 이유는, 우리가 모두 한때 선이였고, 하나였고, 또는 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침묵, 주저함, 간절함이 영화를 통해 고요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