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87 사라진 이름, 영화 덕혜옹주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 품은 시대의 상처영화 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인물 중심의 전기영화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에 잊힌 존재, 곧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통해, 식민지 시대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고요하지만 묵직하게 되새기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조국을 강제로 떠나 일본으로 보내진 덕혜는 한때 황실의 후계였지만, 국가의 멸망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영화는 그녀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외로움과 상실, 그리고 정신적 붕괴를 견뎌냈는지를 조명한다. 특히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녀가 점점 세상과 단절되고, 결국에는 병리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는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이다. 이것은 곧 조선이라는.. 2025. 7. 3. 불꽃처럼 산 이름, 영화 박열 제국에 맞선 시인의 분노이준익 감독의 영화 은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일본 제국주의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선 청년 박열이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어떻게 저항을 관철했는지, 언어라는 무기를 어떻게 혁명의 도구로 승화시켰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준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었던 단어의 힘, 말의 정확성, 그리고 그것을 날카로운 무기로 바꿔 쓰는 방식은 오히려 일본 제국이 두려워한 ‘형태 없는 폭력’이었다.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개새끼”라 칭하면서까지, 권력의 조롱에 맞서는 언어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그것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진심 어린 조롱과 풍자, 그리고 예리한 분.. 2025. 7. 2. 호텔 뭄바이(2018) "죽음 속에서 피어난 용기" 호텔 뭄바이가 그려낸 참혹한 현실의 무게는 단순한 테러 재현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2008년 뭄바이 테러’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그 자체로 무게를 가진다. 그러나 실화를 다룬다는 것이 곧 영화적 힘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창작자는 실화라는 재료 앞에서 더욱 섬세한 감정의 조율과 윤리적 판단을 요한다. 안소니 마라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러한 균형을 탁월하게 유지한다. 영화는 테러범들의 잔혹성과 피해자들의 공포를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그것을 자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총탄이 난무하는 호텔 안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존재들이다. 부유한 사업가도, 호텔 종업원도, 아이를 지닌 부모도 그저 인간일 뿐이며, 이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의 진짜 두려움.. 2025. 6. 19. 영화 사도(2015), 비극으로 남은 부자의 이름 왕이면서 아버지였던 사내 – 영조의 내면과 이중성영화 〈사도〉는 한 왕과 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이라는 체제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영조다. 그는 조선의 왕으로서 절대 권위를 지켜야 했지만, 동시에 사도세자의 아버지로서 부성애 또한 져야 했다. 이 두 정체성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영조의 내면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신하들과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아들에게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것이 아버지로서의 자상함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준익 감독은 영조를 단순히 권위적인 군주로 그리지 않고, 아들과의 갈등 앞에서 괴로워하며 흔들리는 인간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영조는.. 2025. 6. 18. 영화 스포트라이트, 진실의 조명을 켜다 침묵의 카르텔, 그 균열의 시작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은폐되고 축소되어 온 구조적 침묵을 정면으로 들추어낸다. 바로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아동 성추행 사건이다. 문제의 본질은 단지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권력 체계가 작동하며 진실을 조직적으로 덮어온 데 있다. 영화는 이를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로 묘사한다. 교회는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억누르고, 피해자들을 외면하며, 때론 법조계와 언론마저 그 구조에 무기력하게 끌어들인다. 그 결과, 오랜 시간 동안 상처받은 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공동체는 진실을 외면하며 침묵을 선택해 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가 등판한다. 그들은 시작부터 거대한 벽에 부딪.. 2025. 6. 17. 천국의 아이들(1997), 한 켤레 신발로 엮인 천국 결핍 속에서도 빛나는 형제애은 단 한 켤레 신발이라는 사소한 물건을 둘러싼 어린 형제 알리와 자흐라의 이야기를 통해 결핍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희생을 보여준다. 영화는 극심한 물질적 빈곤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형제애는 그 어떤 풍요보다 더 따뜻하고 단단하다. 알리는 동생 자흐라가 학교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신발을 내주기로 결심한다. 단순한 물건을 나누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곧 서로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상징적 행동이 된다. 알리가 신발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자 사회적 소외를 견디는 일이지만, 동생을 향한 사랑이 그 고통을 견디게 한다. 그 고통 속에서 형제가 서로를 향해 말없이 주고받는 신뢰와 이해는 단단한 유대감을 만든.. 2025. 6. 16. 이전 1 2 3 4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