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사도(2015), 비극으로 남은 부자의 이름

by nonocrazy23 2025. 6. 18.

왕이면서 아버지였던 사내 – 영조의 내면과 이중성

영화 〈사도〉는 한 왕과 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이라는 체제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영조다. 그는 조선의 왕으로서 절대 권위를 지켜야 했지만, 동시에 사도세자의 아버지로서 부성애 또한 져야 했다. 이 두 정체성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영조의 내면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신하들과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아들에게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것이 아버지로서의 자상함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준익 감독은 영조를 단순히 권위적인 군주로 그리지 않고, 아들과의 갈등 앞에서 괴로워하며 흔들리는 인간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영조는 사도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도가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그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더욱 혹독하게 아들을 몰아붙인다. 그것은 냉정한 군주의 모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 결정 앞에서 영조는 결코 단호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뒤주는 단순한 사형 도구가 아니라, 영조가 감당하지 못한 사랑과 권력의 균형이 붕괴되는 상징으로 그려진다. 아들이 뒤주에 들어간 순간, 그는 더 이상 아버지도, 진정한 왕도 아닌, 역사에 죄를 남긴 인간으로 추락한다.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영조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과도한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정적인 화면, 무거운 침묵, 그리고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에 머무는 시간으로 영조의 내면을 천천히 보여준다. 특히 송강호가 연기한 영조는 한 인물의 다면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그는 국정을 걱정하는 군주의 얼굴에서,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격노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수시로 변하고, 그 감정의 변화는 극 전체를 지탱하는 무게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권력이란 것이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심지어는 가장 본질적인 가족 관계마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영조의 모습은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상적인 질서를 만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규율을 앞세울 때,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사도〉의 영조는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자, 경고로 남는다. 이 영화는 결국, 나라의 아버지가 되려 했던 사내가 자신의 진짜 아들을 잃어가는 과정을 통해, 권력의 냉혹함과 사랑의 무력함을 동시에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뒤주 속에 갇힌 시대 – 사도세자의 운명과 상징성

사도세자의 비극은 단순히 한 인물이 감당하지 못한 왕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사도〉는 사도세자를 통해 조선이라는 시대가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고, 결국 하나의 인간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완벽함을 강요받는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학문을 익히고 예법을 따르려 하지만, 자신의 감성과 자유로운 성정을 억누르면서 점차 균열을 일으킨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감정적으로 과장하거나 단순히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시대에 맞지 않았던 한 청년의 고뇌와 저항, 그리고 무기력한 좌절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그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낸 구조적 억압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사도는 단지 뒤주에 갇힌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시대라는 뒤주에 갇혀 있었고, 그 뒤주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좁아졌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려는 사도의 기질은 조선 왕실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왕자의 모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정신적 불안과 고립 속에서 결국 광기를 보이게 되는데, 그 광기는 그의 개인적인 결함이라기보다는 억압된 정체성이 틀을 뚫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절규에 가깝다.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동시에 자신답게 살 수도 없는 모순된 경계에 서 있었고, 그 틈에서 끝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뒤주라는 공간을 단순한 사형 도구가 아닌, 시대 전체의 부조리를 응축한 상징으로 삼는다. 뒤주는 조선의 폐쇄적인 정치, 억압적인 유교 질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숨겨야 했던 왕실의 모순을 모두 품고 있다. 사도가 죽음을 맞이한 그 안은 단지 그의 육체가 갇혀 있던 장소가 아니라,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자유로운 영혼을 얼마나 용납하지 못했는지를 드러내는 극적인 무대였다. 이준익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을 사도의 얼굴에 길게 머물게 하며, 그 안에서 서서히 생기를 잃어가는 청년의 눈빛을 통해 관객이 그 고통을 직접 마주하게 한다. 이는 단순한 연민을 유도하는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 ‘폐세자’라 적히고, 역사 속에서는 한 줄로 처리되었지만, 〈사도〉는 그 이름 뒤에 감춰진 인간의 고통과 시대의 책임을 꺼내 보인다. 그는 권력 투쟁의 희생자이자,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야 했던 병든 시대의 상징이다. 영화는 사도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를 만들어낸 시대를 되묻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서 진한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사도〉는 뒤주 속의 비극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어떤 목소리를, 어떤 진실을 또 다른 뒤주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조와 사도, 부자(父子)라는 이름의 간극

〈사도〉는 단순한 역사적 비극을 넘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담긴 시대적 단층과 심리적 균열을 조명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축은 바로 영조와 사도, 이 부자의 충돌과 오해로 점철된 관계이다. 영조는 조선의 국왕이자 백성을 이끄는 절대 권력자로, 왕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누구보다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천민 출신이라는 태생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유교적 규범을 내세우며 권위와 질서를 강조한다. 반면 사도는 자유로운 감성과 예술적 기질을 가진 청년으로, 아버지의 그런 기대와 규범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엔 언어가 없고, 온기도 없다. 사랑은 표현되지 않았고, 존중은 오해 속에 사라졌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평행선처럼,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이 관계의 비극은 단지 감정의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왕이라는 정치적 위치에 있는 아버지와, 그 뒤를 잇기 위해 준비되어야 하는 아들 사이에는 구조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영조는 사도를 후계자로 키워내야 하는 동시에, 정치적 적들을 경계하며 왕권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에게 사도는 단지 아들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상징’이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들은 곧 왕권을 위협할 ‘위험요소’가 된다. 사도의 정신적 불안과 감정적 기복은 영조에게 있어 한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조선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 결함처럼 여겨진다. 영화는 이 정치적 계산과 부정할 수 없는 부정間의 혈연이라는 두 층위를 병치하며, 한 인간을 아버지로서도, 국왕으로서도 갈등하게 만든다. 영조는 결국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고뇌와 모순이 만들어낸 결정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은 이 부자 관계를 통해 단순한 권력투쟁이나 역사적 비극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고독과 단절을 조명한다. 영조는 결코 냉혈한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는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결국 사도를 뒤주에 가두며 스스로의 손으로 아들을 죽이는 자리에 이르러선 눈물마저 흘린다. 그러나 그 눈물은 상황을 되돌릴 수 없고, 사도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진다. 이 장면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어야 할 ‘이해’와 ‘소통’이 부재할 때, 그것이 얼마나 깊은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도〉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역사영화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단절을 보여주는 정서적 드라마이기도 하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아버지와 한 아들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책임, 권위와 정체성, 규범과 감성 사이의 간극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 간극이 좁혀지지 못할 때 벌어지는 비극의 크기는, 단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상징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는 말한다. 이해받지 못한 아들의 절규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아버지의 고뇌가 뒤주라는 공간 속에서 마주할 때, 그것은 단지 죽음이 아니라, 가슴속에 묻힌 슬픔의 완성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