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8 영화 신데렐라(2015), 순수함이 가진 힘의 의미 전통 동화의 재해석과 서사 구조디즈니의 실사 영화 《신데렐라 (2015)》는 단순한 고전 동화의 재현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 속에 각인된 이야기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한 서사 실험에 가깝다.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들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며, 낡은 로맨틱 판타지에서 벗어나 정체성과 내면의 고결함을 강조하는 내러티브로 방향을 틀었다. 원전이 되는 동화, 특히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의 버전은 대부분 수동적인 여성 주인공, 운명적 구원, 계급 상승의 판타지에 의존해 서사가 구성된다. 신데렐라는 일방적인 희생의 화신이며, 그녀의 결말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구원(즉, 왕자의 선택)에 의존한다. 반면 2015년 영화판은 그러한 수동성을 일정 부분 걷.. 2025. 5. 16. 영화 퍼스트 맨(2018), 달을 향한 침묵의 여정 암스트롱의 내면 서사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퍼스트 맨》은 달에 발을 내딛은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는 역사극이 아니라, 그 위업의 중심에 있는 한 인물의 고요하고도 압축된 감정 세계를 탐사하는 내면 서사로서 기능하며, 특히 닐 암스트롱이라는 실존 인물을 영웅이나 상징으로 형상화하는 대신, 감정을 억누른 채 상실의 무게를 조용히 감내하는 인간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구성한다. 영화는 초반부 암스트롱의 딸 캐런이 병으로 죽는 과정을 절제된 시선으로 제시하면서, 이 개인적 비극이 이후 모든 우주 탐사 장면에 배어드는 정서적 배경으로 작동하도록 설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딸의 죽음 이후에도 감정 표현을 철저히 통제한 채 조용히 임무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일관되고, 이는 그가 단순히 .. 2025. 5. 15. 영화 블루 재스민(2013), 무너진 자아의 초상 불안정한 현실과 자아의 해체《블루 재스민》은 몰락한 상류층 여성이 현실과 기억, 자아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단순한 계급 하락의 비극을 넘어서 자아 붕괴의 심리극으로 확장한다. 이는 우디 앨런이 유일하게 가능했던 정서의 해부학이자, 현대인의 허상과 도피, 망상이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침식하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한 결과물이다. 재스민은 단지 ‘부를 잃은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믿고 살아온 삶의 구조(즉 외모, 교육, 결혼, 자산) 모든 기반이 허위였음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점차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실체마저 상실해 간다. 영화는 재스민이 이 과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부정하고 망상 속에 머무르는 모습.. 2025. 5. 14. 영화 로빈 후드(2010), 중세 영웅의 진짜 얼굴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0년작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설 속 의적 ‘로빈 후드’의 영웅 서사를 단순히 되풀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로빈”이라는 인물의 기원, 그가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상징’이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줄거리의 표면은 리처드 1세 사후의 혼란한 영국을 배경으로 전개되며, 로빈 롱스트라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군에서 탈영한 뒤 본의 아니게 귀족 신분을 위장하게 되고, 노팅엄에서 점차 민중의 리더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이 서사는 단순한 영웅 성장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을 뿐, 실상은 봉건제 붕괴와 중앙 권력의 재편이라는 중세 말기의 유럽 정치사를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특히 영화는 잉글랜드 왕권의 불.. 2025. 5. 13. 나이트메어 앨리(2021), 악마적 매혹과 인간의 추락 스탠턴의 몰락, 욕망이 만든 괴물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 2021)는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을 따라가는 심리 스릴러이자 도덕적 우화다. 영화의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은 처음 등장부터 정체성이 불분명한 인물이다. 불타는 집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과거에 대한 은폐와 망각을 암시한다. 관객은 그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불안정한 시작에서 출발한다. 그는 유랑 서커스단에 들어가며 사회의 주변부로 진입하고, 거기서 점술과 독심술이라는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그의 기술은 곧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조작과 기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스탠턴은 언제나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한다. 그에게 사람은 대상화된 존재이며, 감정은 거래 가능한 정보일 뿐이다. 이 영화.. 2025. 5. 12. 영화 패딩턴(2014) "곰 한 마리, 도시를 바꾸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런던《패딩턴》은 겉보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귀여운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밑바탕에는 이방인에 대한 사회의 반응, 타자성에 대한 사유, 그리고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페루에서 온 말하는 곰 패딩턴은 자연재해로 인해 고향을 잃고, 마치 난민처럼 런던에 도착한다. 그가 짐 하나 달랑 들고 도착한 패딩턴 역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단순히 귀여운 코믹 씬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경계심을 품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도시인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시 속에서 패딩턴이 겪는 ‘이방인’의 체험은 이민자나 사회적 약자가 처음으로 문명사회에 발을 들일 때 마주치는 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곧 그런 .. 2025. 5. 10. 이전 1 2 3 4 5 6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