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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산 이름, 영화 박열

by nonocrazy23 2025. 7. 2.

제국에 맞선 시인의 분노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일본 제국주의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선 청년 박열이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어떻게 저항을 관철했는지, 언어라는 무기를 어떻게 혁명의 도구로 승화시켰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준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었던 단어의 힘, 말의 정확성, 그리고 그것을 날카로운 무기로 바꿔 쓰는 방식은 오히려 일본 제국이 두려워한 ‘형태 없는 폭력’이었다.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개새끼”라 칭하면서까지, 권력의 조롱에 맞서는 언어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그것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진심 어린 조롱과 풍자, 그리고 예리한 분석이 섞인 박열의 언어는 단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조선을 대변하는 저항의 목소리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박열이 재판정에서 쏟아내는 말의 연속이다. 그는 피고가 아닌, 연설자처럼 보인다. 일본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려 했지만, 그는 거기서조차 자신을 ‘목소리의 전사’로 만들었다. 법정은 단죄의 공간이 아니라, 박열에게는 투쟁의 무대였다. 영화는 이를 통해 언어가 현실을 얼마나 전복시킬 수 있는지를 시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시적 감각을 시각적으로도 교묘히 연출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불꽃처럼 터지며, 박열의 얼굴 클로즈업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감정선은 단순한 영화적 대사가 아닌 현실의 날 것 같은 절규처럼 느껴진다. 무장 투쟁이나 조직적 운동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이 권력에 맞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영화는 박열이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총이 아닌 ‘말’에서 비롯되었다. 박열이 보여준 저항의 방식은 지금 시대에도 많은 울림을 남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해체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가진 자만이 진정한 저항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단어가 곧 폭탄이 될 수 있고, 문장이 하나의 반란이 될 수 있음을 박열은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박열>은 단순한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휴머니즘 서사가 아니다. 이 영화는 날카롭고 지적인 분노의 기록이다. 시인이면서도 불온했던, 사상가이면서도 광인이었던 박열. 그는 자신의 신념을 포장하지 않았고, 언어를 위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말했고, 정면으로 맞섰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지금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가, 그것이 권력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이기도 하다. 박열의 언어는 시대를 거슬러 지금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가네코 후미코와의 동행

<박열> 속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는 요소 중 하나는 단연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관계다. 그들의 결합은 단순한 연인 관계나 전통적인 의미의 남녀 파트너십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들의 동행은 사랑이면서 동지애이며, 동시에 가장 치열한 시대 저항의 공동 전선이다. 박열은 조선인, 후미코는 일본인. 출신과 배경, 언어가 다른 이 두 사람은, 그러나 당대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과 저항의 방식에서 완전히 같은 좌표에 서 있었다. 영화는 이들을 단순히 로맨스 관계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유대는 정치적이고 사상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철학을 공유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가네코 후미코는 여성으로서 당시 일본 사회 안에서도 이단자였고, 무정부주의자로서도 비주류에 속했다. 그녀가 박열과 함께 무정부주의 사상을 선택하고 ‘불령사’를 함께 만들며 일본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은, 단지 동거인의 삶이 아닌 자기 결정적인 혁명가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후미코의 생애를 단지 박열의 그림자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박열의 목소리와 맞먹을 정도로 후미코의 목소리는 뚜렷하며, 독립된 서사를 가진 인물로 다가온다. 박열이 법정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 후미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스스로를 ‘죄인’으로 명명하고, 함께 죽을 것을 요청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감정적인 동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상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대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전형적인 조력자나 수동적 존재로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을 추종하는 인물이 아니라, 함께 역사를 구성하고 사상을 형성하는 주체적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가 박열과 함께 ‘천황 암살계획’을 꾸미고, 재판에서조차 죽음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낼 때, 이는 두 사람이 공유한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고, 투쟁이며, 어떤 세계관을 함께 짊어진다는 선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를 통해 말한다. 이준익 감독은 이 관계를 통해 단순한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남성영웅주의에 빠지지 않고, 더 넓은 인간적 보편성과 사상적 깊이를 확보한다. 특히 박열이 후미코의 유골을 조선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그녀가 일본 땅에 묻힌 현실은 지금도 ‘사랑과 사상’이 끝내 하나의 국가와 이념 앞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무력함마저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살아냈던 단단한 신념과 뜨거운 연대의 순간을 통해 관객에게 그 시대를 견디는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그들의 사랑은 단지 개인적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시대에 대한 분노와 냉철한 자각이 빚어낸 산물이다. 결국, 박열과 후미코의 동행은 한 편의 투쟁 그 자체이며, 역사가 기록하지 못했던 가장 순수한 저항의 형식 중 하나였다.

 

기록되지 않은 저항

영화 〈박열〉이 갖는 진정한 힘은, 단지 한 인물의 생애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에 의해 소외되거나 침묵당한 기억을 적극적으로 복원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인물을 통해 근대사 속에서 기록되지 못한 저항의 목소리를 화면 위에 되살리며, 우리로 하여금 ‘잊힌 역사’가 단순히 과거가 아닌 현재를 구성하는 한 조각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박열은 독립운동가라 불리기에는 어딘가 불온하고, 무정부주의자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인 한 인물이지만, 바로 그 복잡한 지점이야말로 기존 독립서사의 영웅주의 틀을 깨뜨리고,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저항의 초상을 제시하게 되는 핵심 지점이 된다. 영화는 박열이 불령사라는 급진적 단체를 이끌며 ‘조선인 폭탄 테러범’으로 일본 법정에 선 인물임에도, 그의 내면에는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는 뜨거운 이상과 조국을 향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저항은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형태였고, 어쩌면 한국의 독립운동 서사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한 극단적 사상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박열은 이중의 망각 속에 묻혀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준익 감독은 카메라를 거슬러 올려, 국가가 아닌 ‘개인’이 써 내려간 저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하려 한다. 그는 박열을 그저 대사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정형화된 역사적 서술의 한계를 비판하고, 보다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역사 인식을 촉구한다. 영화는 당대 일본 정부가 이른바 ‘조선인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낸 프레임과, 이를 역으로 이용해 천황제를 조롱하고 폭로한 박열의 전략 사이의 긴장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의 도식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특히 이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박열 개인의 행보가 아닌, 그를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얼굴과 기록되지 못한 저항의 다양한 양태들이다. 이준익 감독은 그간 〈사도〉, 〈동주〉, 〈자산어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시대와 개인의 교차점에 주목해 왔는데, 〈박열〉에서도 그는 그러한 관심을 확장해 ‘누락된 인물’의 존재 이유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박열의 거친 언어, 법정에서의 유머와 풍자는 단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그가 시대를 견디기 위해 사용한 유일한 언어였고, 그것이야말로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불굴의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는다. 나아가 관객은 이 복잡하고 불편한 인물을 통해 역사란 단지 승자들의 기록이 아니라, 그 틈에서 살아남아 자기 목소리를 끝끝내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투쟁과 기억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결국 영화 〈박열〉은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고 있다. 깃발을 든 영웅이나 총칼을 든 전사 대신, 말과 글, 조롱과 연극으로 권력에 맞선 예술가이자 정치인으로서의 박열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국가가 기억하고 싶은 역사만이 아니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호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인물을 꺼내어 관객과 다시 마주하게 만든 이준익 감독의 집요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선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역할, 즉 ‘기억의 재구성’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수행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잊힌 이름을 부르며 시작된 영화는, 상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에 질문을 남기며, 기록되지 않은 저항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증명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