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개척 시대의 그림자”
퍼스트 카우(First Cow, 2019)는 19세기 초 미국 오리건 지역을 배경으로, 서부 개척 시대의 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영화다. 흔히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총격전이나 거친 카우보이의 모습이 아니라, 막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영화의 두 주인공, 요리사 ‘쿠키’와 중국인 이민자 ‘킹 루’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다. 쿠키는 섬세한 요리 실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고, 킹 루는 경제적 성공을 꿈꾸지만 백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존재다. 이 둘은 우연히 만나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한다. 영화는 이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틀 안에서 어떻게든 생존하려 애쓰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들이 성공할 기회를 잡게 되는 계기는 지역 대지주의 저택에 사는 ‘첫 번째 소(First Cow)’ 때문이다. 서부 개척 시대, 아직 농업과 축산업이 자리 잡기 전의 상황에서 우유는 매우 귀한 자원이었다. 쿠키와 킹 루는 밤마다 몰래 대지주의 소에서 우유를 훔쳐와 이를 이용해 ‘꿀 케이크’를 만들어 판다. 그 맛에 반한 개척민들은 돈을 아끼지 않고 이들의 케이크를 사 먹는다. 이 장면은 초기 자본주의에서 ‘독점 자원’을 활용한 사업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성공이 결국 불법적인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든 작은 경제 체계는 결국 사회의 권력 구조 속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초창기 자본주의의 본질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본주의는 흔히 기회의 땅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기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한다. 영화 속 대지주는 소 한 마리로 자신이 가진 경제적 우위를 쉽게 유지하지만, 쿠키와 킹 루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스템의 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영화는 이들이 끝까지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클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의 이면을 드러낸다. 퍼스트 카우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서부 개척 시대를 자본주의의 형성과 연결시켜 분석해 보면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최초의 자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소외되는지를 묵묵히 질문한다.
“고요한 풍경 속의 우정”
영화 초반, 쿠키는 사냥꾼 무리에서 요리사로 일하지만,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거친 남성들 사이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가 숲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킹 루다. 킹 루는 당시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중국 이민자였으며, 생존을 위해 쫓기던 중 쿠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쿠키는 별다른 질문 없이 그를 보호해 준다. 이 장면은 두 인물 간 관계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이들의 관계를 빠르게 형성하기 위해 대화를 강조했겠지만, 퍼스트 카우는 감정의 축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쿠키는 킹 루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킹 루는 쿠키의 선의를 받아들이며 신뢰가 쌓인다. 이후 이들은 재회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데, 이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과장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쿠키와 킹 루의 관계는 대화보다 행동과 침묵 속에서 더 깊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쿠키가 밤마다 우유를 짜오면서 소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장면은 그의 섬세한 성격과 자연과의 조화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가 소에게 느끼는 애정과 감정적인 교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반면, 킹 루는 현실적인 인물로, 쿠키의 요리 실력을 이용해 사업을 구상하고 이익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한 계산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가진 강점을 활용해 함께 살아남으려는 방식이다. 이들의 관계는 서부 개척 시대의 남성적 우정과도 차별된다. 전통적인 서부극 속 남성 캐릭터들은 강한 개성을 내세우고 경쟁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만, 쿠키와 킹 루는 조용한 협력 속에서 서로를 돌본다. 쿠키가 부드러운 성격의 인물이라면, 킹 루는 보다 현실적이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어떤 긴장감도 없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이들의 관계는 혈연이나 계약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신뢰와 공감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들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위협이 가까워질수록 쿠키는 부상을 입고 점점 더 힘을 잃는다. 킹 루는 그런 쿠키를 버리지 않고, 그를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 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거친 세상 속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정서적 연대의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결국, 퍼스트 카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두 인물이 만들어낸 작은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단순한 동업자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관계를 형성했다. 영화는 강렬한 감정 표현 없이도 이들의 관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며,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진정한 우정과 인간적인 유대를 발견하게 만든다.
“자연주의적 촬영과 미장센”
퍼스트 카우는 기존 서부극과 달리, 인물과 환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자연주의적 촬영 기법을 활용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4:3 화면 비율이다. 이는 넓은 풍경을 강조하는 기존 서부극과 다르게, 인물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블라우벨트는 “두 인물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밀착된 구도를 원했다”라고 밝혔다. 좁은 프레임은 쿠키와 킹 루가 살아가는 제한된 세계를 상징하며, 그들의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영화는 자연광을 적극 활용한다. 낮에는 부드러운 햇빛, 밤에는 촛불과 횃불만으로 조명을 구성해 현실감을 높였다. 실내 장면에서도 인위적 조명을 최소화해, 마치 19세기 초의 실제 공간을 들여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는 영화가 전달하는 시대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로케이션 촬영 역시 중요한 요소다. 영화는 오리건의 깊은 숲속에서 촬영되었으며, 세트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되었다. 쿠키와 킹 루가 사는 오두막, 대지주의 저택, 시장의 모습 등은 당시 개척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핵심 요소인 ‘첫 번째 소’는 실제 훈련된 젖소를 사용해 촬영되었으며, 배우가 직접 젖을 짜는 연습을 하며 자연스러운 연출을 완성했다. 카메라 움직임은 절제되어 있으며, 롱테이크를 적극 활용해 인물들의 일상을 묵묵히 따라간다. 빠른 편집 없이 정적인 구도를 유지하며,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천천히 쌓아간다. 특히, 긴장감이 높아지는 후반부에서도 흔들리는 카메라 대신 차분한 시선을 유지해, 인물들의 불안과 고립감을 더욱 강조한다. 결국, 퍼스트 카우의 촬영 기법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4:3 화면 비율, 자연광 활용, 사실적인 로케이션 촬영, 절제된 카메라 움직임은 모두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자본주의의 시작과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소외된 인물들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며, 영화의 감성적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