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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2021), 악마적 매혹과 인간의 추락

by nonocrazy23 2025. 5. 12.

나이트메어 앨리(2021), 악마적 매혹과 인간의 추락
나이트메어 앨리(2021)

스탠턴의 몰락, 욕망이 만든 괴물

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 2021)는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을 따라가는 심리 스릴러이자 도덕적 우화다. 영화의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은 처음 등장부터 정체성이 불분명한 인물이다. 불타는 집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과거에 대한 은폐와 망각을 암시한다. 관객은 그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불안정한 시작에서 출발한다. 그는 유랑 서커스단에 들어가며 사회의 주변부로 진입하고, 거기서 점술과 독심술이라는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그의 기술은 곧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조작과 기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스탠턴은 언제나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한다. 그에게 사람은 대상화된 존재이며, 감정은 거래 가능한 정보일 뿐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스탠턴이 보여주는 ‘욕망의 자기 파괴성’이다. 그는 인정 욕구와 통제 욕망을 거침없이 좇으며, 점차 더 위험한 게임에 뛰어든다. 릴리(케이트 블란쳇)와 손잡고 상류층 인사들을 속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욕망은 윤리적 한계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러나 릴리는 스탠턴보다 한 수 위의 조작자이며, 그를 이용해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려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의 세계에 스스로 빠져들고, 그 구조가 무너질 때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감마저 붕괴된다. 영화는 점점 환각과 현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며 스탠턴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지뢰밭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마지막이다. 스탠턴은 처음 그가 혐오하던 ‘긱’의 자리에 스스로를 놓는다. 긱이란 인간 이하의 존재, 동물처럼 살과 피를 탐하는 비인간적인 존재다. 서커스의 단장은 긱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하루 세끼와 술”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탠턴은 더는 그것조차도 거부하지 않는다. “딱 나에게 맞는 일이군요”라는 말에는 자포자기와 자아붕괴, 그리고 스스로 괴물이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체념이 담겨 있다.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긱이 될 운명이었으며, 영화는 그 과정을 사회적 성공이나 윤리적 판단이 아닌, 인간 본성의 타락이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추적한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스탠턴을 통해 질문한다. 과연 인간은 자신이 만든 거짓을 얼마만큼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거짓이 무너질 때,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게 되는가? 그 대답은 결국, 광대의 얼굴을 한 괴물로 전개된다.

 

릴리의 미로, 거울 속의 심연

릴리스 리터(케이트 블란쳇 분)는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스탠턴 칼라일의 몰락을 부추기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단순한 팜므파탈이나 조력자 이상으로 복잡하게 구축된 인물이다. 그녀는 심리학 박사로서 상류 사회와 그 안의 심리를 꿰뚫는 전문성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다. 그러나 표면적인 교양 뒤에 숨어 있는 그녀의 본질은 이중적이고, 영화는 그 이중성 안에서 릴리의 진짜 얼굴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녀는 환자들의 비밀을 녹음한 자기 테이프를 숨기고 보관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철저히 통제하려 한다. 릴리의 사무실은 어둡고 차갑고 고전적인 장식으로 채워져 있어 마치 정신 분석의 무의식 공간을 시각화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방은 릴리의 내면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며, 그녀가 지닌 정체성의 거울처럼 기능한다. 스탠턴이 거짓말을 기술로 여기며 윤리의 경계를 허무는 동안, 릴리는 그 거짓을 읽고 조율하며 자신의 계획 속으로 흡수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스탠턴을 '읽고' 있었고,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그를 통해 실행할 도구로 삼는다. 그녀의 복수는 단순한 개인 감정의 해소를 넘어, 남성 중심 권력 구조에 대한 반격처럼 읽히기도 한다. 릴리는 과거 상류층 남성에게 상처를 입은 경험을 암시하며, 그 기억의 조각들을 테이프 속에 저장한다. 이 점에서 그녀는 단지 복수심에 불탄 인물이 아니라, 상처를 기억의 형태로 수집하고 분해하여 자신만의 힘으로 전환하는 연금술사 같은 존재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복합적인 인물을 섬세하고 냉철하게 연기하며,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절제된 몸짓으로 캐릭터에 미스터리를 더한다. 릴리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인물이며, 그 침묵은 상대방의 심리를 붕괴시키는 무기가 된다. 그녀의 말은 치료라기보다는 조종에 가깝고, 그녀의 분석은 진단이라기보다는 판결이다. 심리학자라는 직업은 영화 안에서 윤리적 권위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릴리의 지성과 전략적 사고는 스탠턴의 감정적 허영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릴리는 결국, 스탠턴보다 더 치밀하고 위험한 존재로 부상한다. 그녀는 사교계의 어두운 구석과 인간 심리의 비틀린 욕망을 꿰뚫고 있으며, 그 미로 속을 자유롭게 오간다. 스탠턴이 거짓과 환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을 때, 릴리는 이미 거울 속 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복수심, 쾌락, 통제가 한 몸을 이룬 복합 감정이며, 이 감정은 냉정하고 우아한 외면 안에 은폐되어 있다. 결국 릴리는 스탠턴을 파멸로 이끄는 유혹자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만든 환상의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거울'이다. 영화는 릴리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탐욕과 통제 욕망, 기억의 권력성을 동시에 탐구하며, 한 여성의 냉철한 복수극을 정신분석의 틀 속에 풀어낸다. 

 

황금빛 악몽, 장르의 탈을 쓴 운명의 서사

나이트메어 앨리는 필름 누아르의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고전적 누아르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극성과 윤리적 붕괴를 시각화하는 장르 혼종의 작품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에서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개나 단순한 서스펜스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가 택한 것은 인간 욕망의 스펙트럼을 시청각적 언어로 압축하고 변형해, 일종의 ‘운명 서사’를 조형하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색채 설계와 공간 배치는 한 편의 회화처럼 세밀하며, 그 속에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지옥의 층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반 카니발 세계는 먼지와 피, 기이한 퍼포먼스로 뒤엉킨 생물학적 리얼리즘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육체적 욕망과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로서, 인간이 타락과 구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존의 실험실처럼 묘사된다. 델 토로는 이곳을 붉고 누런 색조로 채색하며 관객에게 후각과 촉각을 환기시키는 비물질적 감각을 전달한다. 반면 영화 후반의 도시 공간(특히 릴리의 사무실과 호텔, 상류층의 응접실 등)은 냉철하고 대칭적인 구도로 구성되어 있어, 이성과 통제, 욕망의 세련된 변주가 이뤄지는 세계로 기능한다. 이처럼 영화는 공간 자체를 주제적 대비의 장치로 활용하고, 인물이 이동하는 물리적 공간 변화가 내면 윤리의 추락 궤적과 평행하게 흐르도록 설계된다. 촬영은 대체로 고전 누아르처럼 명암 대비가 강한 조명을 따르면서도, 인물의 얼굴보다 그 뒤편의 어둠이나 빛의 반사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는 인물의 외양보다는 그들 뒤에 있는 숨은 욕망, 과거의 그림자, 혹은 미래의 예감을 더 강조하는 델 토로의 심리적 접근 방식이다. 음악은 현악기의 불협화음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특정 장면에서는 거의 공포 영화에 가까운 음향 설계가 도입된다. 특히 릴리와 스탠턴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침묵에 가까운 정적이 긴장을 극대화하며, 언어 이면의 심리적 진동을 포착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예언과 운명이라는 고대 비극의 모티프를 장르적 외피 속에 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스탠턴의 몰락은 단순한 사기꾼의 실패라기보다, ‘나는 짐승이 되지 않겠다’는 인간적 자만의 필연적 붕괴로 읽힌다. 영화는 전체 구조를 통해 이미 결말을 예감하게끔 만든다. 예지 능력이라는 주제 자체가 미래를 말하지만, 그것이 바뀔 수 없는 고정된 종말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사실상 현대적인 운명 비극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 모든 인물은 선택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운명에 구속되어 있으며, 특히 스탠턴은 인간 욕망을 조종한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스스로가 가장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의 탐욕, 정체성, 윤리의 붕괴를 누아르, 심리극, 비극 서사의 언어로 한데 녹여낸 델 토로의 형이상학적 실험이다. 영화는 장르를 활용하되 그 안에서 도덕적 질문과 철학적 파국을 기어코 불러내며, 악몽의 형태를 한 진실의 거울을 끝까지 들이민다.